▲ 시조 장절공 존영(사진=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지구에 살고 있는 어느 민족이든 후세대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위대한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도 두번째 통일 위업을 달성한 고려 500년 역사의 최고 공신으로는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장군이 있다. 이러한 위인을 오늘에 되새겨봄으로써 민족의 자긍심을 키우고, 21세기 한반도 통일의 씨앗을 키우는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장절공 신숭겸 장군은 나말여초 시대의 태봉국 기병 대장군으로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에서 탄생했다. 소싯적 곡성군 비례산 신유봉과 동리산 태안사를 오가며 학문과 무예를 익혀 궁예가 건국한 태봉국(후고구려)의 장수가 되었다. 공은 918년 왕건과 함께 고려를 개국했으나 927년 왕건태조가 대구 공산전투에서 후백제 견훤 군대에 포위 당해 사경에 처하자 왕건 태조의 갑옷으로 바꿔입고 어가를 타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왕을 대신해 위왕대사한 것이다. 

   
  ▲ 사안도(射雁圖) (사진=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신숭겸 장군이 왕으로 변신해 위장술을 펼치는 틈을 타서 왕건 태조는 견훤 군대의 포위망을 빠져나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이와같이 장절공의 위왕대사 기지로 왕건 태조는 후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져 936년 통일의 대업을 달성했으며, 고려 500년의 왕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전남 곡성에는 공의 성장무대가 된 용산단, 배향지인 덕양서원, 두상을 매장한 장군단, 용마를 매어 뒀던 계마석 등 10여 곳에 유적과 유물이 현존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이곳 곡성 땅을 거닐면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한없는 감회를 피력해 본다.

사료에 기록된 내용들은 이러하다. 장절공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도와 고려개국의 문을 열고, 대구 공산전투에서 사경에 처한 왕건 태조를 구하고 장렬히 위왕대사 하심에 이를 지켜본 용마가 견훤이 버린 두상을 물고 고향으로 달려와 태안사 후록 등에서 3일동안 슬피 울면서 지난날 함께 동고동락했던 스님들을 불렀다. 

   
  ▲ 장군단(사진=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동파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장군의 두상임을 확인하고 예를 갖추어 석함에 모셔 장군등 (비봉귀소혈)에 안장하니 이를 장군단이라 부른다. 적국의 장수인 장절공 두상을 태안사 후록에 안장한 스님들은 천년을 비밀로 지켜오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단소를 보호하고 매년 제향을 올려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장군단은 봉두산 아래 산기슭에 있다.

또한, 동리산에는 동리산문의 개창조인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혜철국사와 도선국사가 선종의 법화사상(즉심시불)으로 불교민중화에 힘썼고, 절대 자유와 만민이 평등한 세상의 구현을 위한 도량이며, 위민과 민본의 요람으로 삼은 태안사가 있다.

이런 충절과 위민의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불의에 저항하고, 권력에 야합하지 않아 나라의 위기 때마다 의병과 백성들의 저항으로 나타난 의향 호남인들의 정신적 산실이요 충절의 고장이 바로 이곳 곡성이다.

   
  ▲ 용산단(사진=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필자는 오늘 태안사 후록에 있는 장군단에 올랐다. 빛나는 햇볕 아래 몇 그루의 고목이 잠잠히 서 있는 한적한 깊은 산골에서 오늘도 그날의 말 울음소리가 내 귓전을 때리며 맴돌고 있음을 느낀다.

필자는 이 고요한 장절교에서 새롭게 단장한 장군단을 바라보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용감히 싸우다 위왕대사한 충과 절의의 화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과 장군의 두상을 물고와 이곳에서 3일동안 슬피 울어대다 쓰러진 용마의 애끓는 함성을 회상해 보며 깊은 회한에 잠겼다.

그 격렬했던 대구 공산 동수전투에서 왕건 태조가 견훤 군대의 포위망에 갇혀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장군은 태조의 갑옷으로 바꿔입고 어가를 타고, 오천 병사의 맨 선봉에 서서 그 애국에 불붙는 눈을 치뜨고 대군을 호령하다 장렬히 전사한 장군의 모습이 눈에 어려 선하다. 장한 그 모습, 우렁찬 그 호령, 삼한통합과 고려 500년 왕업의 태사. 아~ 만고의 청사에 빛나는 신숭겸 장군이여.

나는 발길을 돌려 장군께서 소싯적 학문과 무술을 연마하면서 말타고 달리셨던 봉두산과 비래산 신유봉에 이르는 산 능선길을 따라 장군의 악강지인 용산단에 이르렀다. 용산재 입구에 우뚝 솟아 있는 장군의 동상을 바라보니, 큰 칼을 손에 쥐고 대군을 호령하던 용맹스럽고 늠름한 장군의 모습과 동상의 기단 좌우에 새겨진 충렬도와 사안도가 충절정신과 출중한 무예로 연마된 신궁의 활 솜씨와 화려한 칼솜씨를 한없이 뽐내고 있다.

   
  ▲ 계마대(사진=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그 충절의 애국애족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며 탯자리인 용산재 안으로 들어섰다. 만 가지 회포가 가슴에 찬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장군의 악강지인 곡성에서 위민과 애민의 충절정신이 크게 현창되지 못하고 오늘에 이름에 한없는 부끄러움이 나의 뇌리를 엄습한다. 이 무거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용산재 밖을 나서니 싸리문 옆 배롱나무 가지는 달빛을 받아 그림자가 땅 위에 어지럽고, 간혹 높은 나무가지 위엔 보금자리 친 산새들이 푸드덕거린다. 산새도 아마 이 나그네의 회포를 짐작해서 잠자리가 편하지 않은 모양이다.

의관을 갖추고 나를 인도하는 사당지기 노인을 따라 용산재 안으로 들어섰다. 촛불을 켰다. 화상을 모신 영정실 문을 여니 장군의 모습이 살아 계신 듯 하여 나는 옷깃을 여미며 한동안 묵상에 잠겼다.

"친구여(태봉국 백성이여), 인편으로 전해온 소식을 들어보니, 모두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고 해서 많이 안심(위안)이 되는구나. 나만 여전하게 조용히 지내고 있자니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라네. 우리 서로 만나는 것이 아직 기약은 없지만, 서로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만 우리 마음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겠지. 당신(백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에 정신이 어둡고 기운이 달려 이만 줄이려 하네." 이회 숭겸 <장절공실기 및 동국명현 유묵집에서>

이 글은 장절공께서 남기신 유일한 유묵이다. 백성들을 친구로 의인화한 편지 형식의 글로, 이 유묵 속에 깃들인 장군의 위민과 애민의 마음이 필자를 감동케 한다.

   
  ▲ 덕양서원(사진=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이는 육두품 등으로 서열화된 부패한 신라와 궁예의 관심법과 폭정에 짓밟힌 태봉국 백성을 구하고자 노심초사하는 장군의 애절한 애족 정신이며 나라를 근심하시는 숭고한 우국충정의 마음이다. 이 정신을 왕건 태조는 국가통치이념으로 삼아 백성들을 위해 중폐비사했다.

아~ 그 마음 그 정신이 바람 앞에 등잔불 같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고려개국의 주역으로 일등공신이 되었도다. 정1품 품계의 5개 공신(고려개국일등공신, 삼한벽상공신, 태조묘배향공신, 위사전망공신, 숭의전배향공신), 곡성과 평산의 성황신 및 평산 신씨 시조로 사성과 본관을 받는 등 고려와 조선 양조를 통해 가장 존중받은 인물이 되었도다. 따라서 고려조와 조선조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장절공의 추앙과 숭보는 불교의 무차회, 도이장가를 낳은 국왕 주재의 팔관회와 연등회를 비롯해 국가적 단위로 제향을 모셔왔으며, 오늘날은 각 지방의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지에서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다양한 제향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불교의 불제와 무교의 무가에서도 수호신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는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무교에서도 장절공이 오늘날까지도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장절공만을 단독 배향한 덕양사는 오백 년을 한결같이 지방 유림들이 매년 춘·추향제를 모셔오고 있으며, 전국에 분포한 13곳의 유적지에서 매년 봉행된 향사는 장절공께서 살아서는 영웅이요, 죽어서는 신격이 되는 훌륭함과 그 충절의 애국·애족정신을 고귀하게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적 제향은 물론 전국 각 지역의 지자체에서, 여러 종교단체에서, 문중에서 1,1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활발하게 제향을 모시며 추앙되어 온 인물은 한반도 5천년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그 만큼 장절공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적 지지를 받아왔다는 증거일뿐만 아니라 전설과 의례를 통해서 영웅화와 신격화라는 화학적 변화를 통해 영구히 기억하는 서사와 의례의 표본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반도 5천년 역사의 유일무이한 충신의 상징이며, 고려 5백년 역사의 주인공이고, 의향 호남출신으로 충절의 대명사요 역전의 용장이며 맹장으로 나말여초의 기린아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뒤를 이어 필자도 미력이나마 나라와 겨례를 위해 살아 보리라 다짐해 본다.

아~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시여! 영원무궁 하소서! 그토록 사랑했던 나라와 겨례와 민족과 함께.

필자는 한없는 감회 속에 장절공의 탯자리(구룡농주혈)에 머리를 내려놓고 꿈속에서라도 장절공의 유업이 후세에 찬란히 빛나길 바라며 잠을 재촉해 본다.

이곳 곡성 땅에 서린 곡성의 성황신 장절공의 유물과 유적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 더욱 발전시키고 현창하는 법고창신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묻혀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문화혁명의 중흥을 고대하면서...

[덕양서원 도유사 신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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